다시 봄이 올까요?

그 순간,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혜주의 차 번호가 주차장에 찍힐 때부터 줄곧 엘리베이터에 앞에서 기다렸던 강준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정확히는 제 비서인 부속실 김치훈 실장이 혜주에게 냅다 후려쳐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최혜주, 너 왜 이래!” “야야! 보안팀 불러! 아니 아니, 경찰 불러, 경찰!” “경...

[21화와 이어집니다.] 일 년 전, 그러니까 남자와 약속한 그 날, 남자가 떠난 지 딱 일 년 되던 날. 평일이던 그날에 연차를 내고선 오랜만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서울을 떠나고선 처음 찾은 남자의 오피스텔 앞에서 온종일 기다렸다. 새벽부터 밤까지. 그리고 심야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버스에서 울었다. 아.. 결국, 가버린 거구나. 떠나버린...

[21화와 이어집니다.] 일 년 전, 그러니까 남자와 약속한 그 날, 남자가 떠난 지 딱 일 년 되던 날. 평일이던 그날에 연차를 내고선 오랜만에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었다. 서울을 떠나고선 처음 찾은 남자의 오피스텔 앞에서 온종일 기다렸다. 새벽부터 밤까지. 그리고 홀로 심야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내내 버스에서 울었다. 아.. 결국, 가버린 거구나. ...

집으로 오는 차 안은 숨 막혔다. 일단 집으로 갈까요? 남자의 한 마디를 끝으로 우리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참고 참다못해 간간이 새어 나오는 한숨 소리가 전부였다. 돌아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책상 의자에 앉았다. 앞으론 절대 남자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은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되려 남자가 ...

삼 일 만에 회사에 발 도장을 찍었다. 병가로 인한 휴가는 그대로 유지했으나, 이미 인사이동 결재가 승인되어버린 상태였기에 재결재를 해야 했다. 그 사이 이틀 동안은 내내 남자와 붙어있었다. 씻으러 가는 시간을 빼곤 한시도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고생길로 썩어 문드러져 반쯤 죽어버린 정신과 마음은 남자의 품에서 되살아났다. 남자와 함께 회사...

“죄송합니다.” 김 실장이 한 말을 끝으로 방 안이 다시 적막으로 얼룩졌다. 나처럼 침묵하던 김 실장이 남자가 있는 병실을 알려주며 자리에서 일어난 건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그 뒤로도 꽤 오래 방에 홀로 남았다. 남자를 떠날 수밖에 없는 선택지에 놓인 잔인한 현실에 빈방을 한숨으로 가득 채웠다. 잔뜩 굳어 말라버린 눈물 자국을 행여 남자가 눈치라도 챌까,...

“대감마님! 정신이 좀 드십니까?” “영범이구나.” “아이고, 예예. 맞습니다, 맞아요. 저 영범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영범이가 건네는 냉수 한잔을 먹고 나니 정신이 맑아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집이 확실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연이와의 만남이 또 늦춰졌다는 허탈감에 눈을 한번 질끈 감았다 떴다. 그 모습에 영범이가 몸을 부축해왔다. “대감마님...

이제는 작은 숨소리도 느껴지지 않는 몸이었지만 품에서 놓을 수 없었다. 조금이나마 온기를 나눠주려 더 세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연아.. 연아..! 제발.. 제발.. 눈을 떠보아라..” 행여나 부르면 다시 돌아올까. 몇 번을 목놓아 불러보았지만, 한번 눈을 감은 연이의 눈동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품에서 놓지 못하고 있던 연이는, 영범이가 ...

남자는 꽤 아날로그적인 사람이었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확인하는 대부분의 사람과는 달리 아침마다 잊지 않고 신문을 챙겨 읽고, 가입하지 않은 사람 찾는 게 더 어렵다는 카카오톡 메시지 앱 대신 문자 메시지를 사용하는 게 꼭 그랬다. 그래서 남들은 TV를 둘 법한 거실 한 편에 도서관에나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책장이 자리해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

“먼저 내려가서 차 빼 올게요. 천천히 와요, 여주 씨.” 5시 50분. 남자는 칼같이 정확한 시간에 맞춰 대표실에서 나왔다. 이미 삼십 분 전부터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남자를 내보내고 기다리는 십 분이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째깍째깍,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사무실 안. 한쪽 구석에 무소음이라 적혀있는 글자가 무색하게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

남자를 끌어안고선 잠깐 또 정신을 놓았다. 일어났을 땐 다시 병실 침대 위에 누운 채였다. 고개를 돌릴 힘도 없어 곁눈질로 옆을 응시했다. 벌겋게 충혈된 눈의 남자는 링거 바늘이 꽂힌 내 손등을 쉬지 않고 만져대고 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흐느낌이 잔뜩 말라버려 더는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내 눈을 다시 축였다. 대표님.. 잔뜩 부은 목이었지만, 갈라짐 속에...

혼례를 올렸다고 해서 딱히 변한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반은 비어있던 남자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 정도. 그렇다고 이 큰집에 나 혼자 생활하는 것은아니었다. 영범이라는 자의 가족들이 행랑채에 머물며 이곳에서의 내 생활을 도왔다. 오래전부터 남자 집안의 가노였던 그의 아버지는 신분제가 폐지되고 집을 떠나도 좋다는 남자 아버지의 말에도 여전히 이곳에 머물며...